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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이젠 쓸모 없는 습작 노트

구라도사 2023. 12. 4.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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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군대를 제대하고, 친구들과 함께 모여 희희락락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99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웹진'을 만들기로 하고, 서로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대의 인연으로 알게 된 무려 서울대학교 동양화학과를 다니는 군대 동기 녀석과 연락이 닿아 우리가 글을 쓰고 그 녀석이 그림을 그리는 소위 '만화'를 만들고자 했다.

나는 그 때 머리 속으로만 품고 있던 이야기 하나를 A4지 한 장에 적어서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Death Note'와 모티프가 유사한 것이었다.


미래 일기


어느날 A라는 소년이 학교에서 수업을 빼 먹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우연히 오래된 문구점을 발견한다. 그가 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문을 연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가게가 문을 열었다는 것 자체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는 무심코 그 가게 안으로 들어 갔다. 그러자 어떤 젊은 남자가 먼지가 잔뜩 쌓인 학용품들을 진열해 놓고 그것을 팔고 있었다. 의외로 가게는 넓었다. 그러나 있는 사람이라고는 그 사람과 A 둘 뿐이었다. A는 여기 저기 돌아 봤지만 그리 새로운 물건은 없었다. 그는 들어 갔다가 그냥 나오기 민망하여 얇은 노트를 한 권 샀다. 그리고 그 값을 지불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학교로 돌아왔다. 다음 수업 시간이 시작되고 그는 아무 생각없이 그 노트를 펼치고 낙서를 시작했다. 평소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A는 그 종이 위에 자기가 좋아하는 미술 선생님을 그렸다. 그리고 자기 집도 그렸고,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그렸다. 또한 자기가 제일 아끼는 동생의 얼굴도 그렸다. 오래간만에 그리는 그림이라 그런지 잘 안그려졌지만 그는 내심 행복했다. 자신이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는 그 얇은 노트에 그동안 그려 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렸다.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다가왔다. 그러면서 그 노트를 빼았으려고 할 때 그는 그 그림들을 몰래 뜯어서 구겨 버렸다. (화면 전환) 그 때 그 그림과 동시에 미술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던 미술 선생님, 동생, 친구들, 그리고 무심코 그렸던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은 온몸이 짓이겨진 체로 죽게 된다 또 집도 갑자기 붕괴되었다. (다시 수업) 그는 수업 시간에 딴짓을 했다고 선생님한테 욕을 먹는다. 다시 강단으로 선생님이 갔을 때 그는 다시 그 노트를 펼쳐 놓고 아무렇게나 그 선생님의 얼굴을 그리고 그 위에 X표를 한 후에 ‘뒈져 버려라’라는 말을 쓰게 된다. 바로 그 때 그 선생님의 몸이 칼로 자른 듯이 정확하게 X자로 잘라 지면서 아무 말도 못한 체 죽게 되었다. 그 선생님의 죽음으로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는 못 믿겠다는 듯이 그 노트를 살펴 보았다. 그러자 그 노트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자 밖에 없었다. 그는 설마하면서 그 종이를 가지고 윗층으로 올라가서 종이를 태웠다. 그 순간 선생님 시체는 갑자기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고 한줌의 재로 순식간에 변하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에 너무 놀라서 교실 아래로 뛰쳐 내려왔다. 경찰이 왔지만 아무런 물증도 없었고, 더욱이 단서조차 없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그는 미술 선생님을 비롯하여 자신이 그렸다가 찟어 버린 것들이 떠올랐다. 가장 가까운 미술실로 그는 달려 갔다. 역시 그의 그림과 같이 미술 선생님은 온몸이 짓눌려 죽어 있었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고,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 때 그의 모습을 본 수위 아저씨가 미술실로 뛰어 갔고, 미술 선생님의 죽음을 보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러다가 문득 수위 아저씨가 생각났다. 자신이 미술 선생님을 죽인 범인으로 몰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트를 꺼내서 수위 아저씨를 그렸다.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그는 주저 없이 그 그림 위에 X표시를 했다. 역시 수위 아저씨도 몸이 X자로 잘려 죽게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미 나를 신고했을 것이다. 이 노트 때문이라고 하면 믿어 줄까? 더욱이 그 노트는 이제 두장 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지금 이것이 모두 꿈이었으면 하고 바랬다. 그 때 그의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그가 자고 있으면서 이 모든 것이 꿈으로 변하게 되는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자신이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 위에 꿈꾸는 듯한 실루엣으로 이 모든 것에 대한 글씨를 써 넣었다. 그 순간 그는 잠이 들었다. 얼굴을 온통 일그러트린 채로. 하지만 그는 그 꿈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는 깨어난 그림은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의 곁으로 걸어 온 남자가 있었다. 바로 그 가게 주인이었다. 그리고는 한 장 남은 노트를 들고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이 정도 퀄리티라면 너희들이 모두 나가 자빠질 정도로 충격이었었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까임'이었다.

재미없다는 양반이었고, 쓰레기라고 한 것은 그나마 들을 만 했다. 생각에 '절름발이'라는 말은 정말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으나, 소주 한 잔 마시며 떠들어 댄 내용이기에 그냥 웃어 넘겼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2006년. 'Death Note'가 나오고 나는 생각했다. 이거 내 생각을 표절한 것이라고... 그런데... 이 얘기는 우리들밖에 모르는 대단히 사적인 얘기였고,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한 조각의 쓰레기에 불과했었다. 그리고 'Death Note'를 보고 난 후에 생각했다. 내가 더 생각을 정형화하고, 디테일하게 꾸몄다면 저런 얘기가 나왔을까?



결론은 'No'이다. 난 그냥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적어도 '먼저' 썼다면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Death Note'는 내가 먼저 생각했던 것이라고.



이 즈음해서 문득 나는 반성을 한다.(반성의 연속이구나..)



선빵의 중요성. 생각만 하면 뭘 하나? 써대고 선빵을 날려야지.



그래.. 그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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