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도사의 글 창고

IN Generation - The Creative Team

쫓겨난 이들의 세계 자세히보기

혼잣말

멍석 위에서 춤 못 추는 놈

구라도사 2023. 12. 8. 21:27
728x90

 

오래 전 일이다. 한 10년은 되었을 거다. 그 때 나는 한창 홈페이지며 블로그에 글을 잔뜩 남길 때였다. 소설이랍시고 이런 것 저런 것을 올렸고, 마치 얼치기 철학자가 빙의한 듯한 태도도 온갖 현학적인 말(지금 내가 읽어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의 나열)을 쏟아낼 때였다.

그 때 어떤 출판사에선가 내게 글을 의뢰했다. 홈페이지의 글처럼 생활과 관련된 담백한 글(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 글을 의뢰한 사람도 참 글을 볼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을 하나 써 줄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앞뒤 재지 않고 그러마 했다. 물론 내 글로 출판사에서 내는 책을 몽땅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꼭지만 싣는 것이었지만 난 마치 그것이 내 글을 사회가 인정해주는구나하는 착각을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인생사가 늘 그렇지 않은가. 평소 아무도 시키진 않았어도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발로는 꽹과리도 치고, 태평소까지 불어재끼던 놈이 멍석을 딱 깔아주면 삽질하다 못해 바보처럼 난리 브루스를 추지 않는가 말이다.

내 기억엔 그 때 보낸 글이 ‘소설을 쓰는 즐거움’이라는 것으로 응답하라 1988에서도 다루지 않을 만큼 고리타분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제목이었다.

더욱이 나는 소설가도 아니고 그저 혼자 소위 말하는 ‘딸딸이’치는 허접한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던가. 지망생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낯 뜨거울 만한 글을 싸질러 놓고 ‘소설을 쓰는 즐거움’에 대해 글을 써서 보내다니. 지금 생각해도 똥꼬를 월드컵 운동장에서 깐 만큼이나 부끄럽고 쪽팔리다.

물론 결과는 ‘다음 기회에 기회가 되면...’이라는 ‘기회’가 두 번이나 나온 제목으로 시작되는 메일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보낸 두 번의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난 어떤 기회를 포착하거나 혹은 주어진 좋은 상황을 잘 이용하지 못하는 놈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728x90

'혼잣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지한 게으름  (0) 2023.12.10
지랄 쌩쑈  (1) 2023.12.08
문득 깨달음.  (0) 2023.12.07
정말 그런가?  (2) 2023.12.07
다름과 틀림을 모르는 사람들.  (1)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