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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이들의 세계 자세히보기

단편 소설

실체

구라도사 2023. 12. 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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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독일에 가고 싶다. 내가 아는 이가 한 명도 없는 독일에 가고 싶다. 독일어 실력이라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것이 전부인 내가 독일에서 과연 생활할 수 있을지 그런 걱정은 없다.

제2 외국어라….

제1외국어는 영어, 제2외국어는 독일어, 제3외국어는 한문, 제4외국어는 나….

아무리 배워도 모를 제4외국어. 독일에 가기 위해서는 일본어 공부를 해야 한다. 일본어 공부를 해서 독일 갈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독일로 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선 여권이 필요하다. 그리고 거기까지 갈 비행기 표가 필요하다.

가서의 생활은?

독일 거지는 독일어를 하겠지?

난 일본어를 할 것이다.

일본어를 하는 거지.

그래서 꼭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아니다. 단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일본으로 가야 해서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내 목적은 아니다. 단지 수단일 뿐이다.

경제 대국 일본에서 돈을 벌어 독일에 가고, 독일에서 일본어를 쓰는 한국 거지.

하지만 꼭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벌 필요는 없다. 일본으로 가서 돈을 벌면 그만큼 물가가 비싸니까 더 쓸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리고 일본에 간다고 해도 꼭 일본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일본에서 영어를 쓰면, 그것도 진짜 영어권 사람들이 들으면 발음이 나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 정도 영어 실력이면 일본에서 어딜 가나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가 되니까 일본어는 그리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목적이 독일 가서 거지가 되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니까 일본어를 쓰는 한국 거지를 상상할 필요도 없다.

왜 독일에 가는가?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어서?

그냥 사람들을 피해서 아래 지역으로 내려가기만 해도 아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에 나가 황색 니그로라고 손가락질받느니 남도 지방에서 유창한 서울말 쓰면서 말단 직원 노릇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로 도피는 무가치한 것이 아닐까?

외국 문물을 보러 가는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러면 내가 여행하기 위해 독일로 가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내 나라 문물도 제대로 보지 못한 내가 독일 가서 독일 문물을 본다고 해서 뚜렷하게 어떤 감흥을 받을지도 의문이다.

 

날벼락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맑은 날씨다.

왜 죄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서울을 모두가 감싸려 들까?

수도 방위 사령부를 비롯한 재해 대책 본부까지 모두 서울에 있는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날벼락은 이 맑은 날씨에 죄 많은 이들 위로 떨어지지 않고 엉뚱한 곳에 와 박힐까?

한 죄 많은 이가 창밖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독일로 떠날 여행을 머릿속에 잔뜩 그려 넣었다가 끝내는 흰 캔버스에 많은 그림을 그리면 검게 되듯이 검은색으로 회귀한다. 원점과 다른 곳으로 말이다.

독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원점이었다면 가서 뭐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종착역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떠나지도,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많은 죄 많은 이 중에 죄가 더 많은 이들은 서울에 살고 있는 것 자체로 원죄를 짊어지게 된다.

한 인간의 생명 값보다 더 비싼 한 평의 땅덩어리.

60평짜리 단독 주택에 사는 이들은 대략 60명의 목숨을 밟고 사는 것이다. 죄 많은 놈들. 죄 많은 놈 중 하나인 그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20,000원을 본다.

‘20,000원으로 뭘 할 수 있지?’

그는 광고 문구와 같은 생각을 한다. TV 광고대로 라면 900원짜리 햄버거를 22개하고 1/5조각 먹을 돈이다. 그 광고 이후로 그는 모든 가치 척도를 900원짜리 햄버거를 기준으로 재게 된다.

집값은 33만 개의 햄버거를 살 수 있는 돈이고, 자기 월급은 2,000개의 햄버거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자신의 생명 값은 16만 개의 햄버거를 살 수 있는 돈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모두 16만 개의 햄버거인 것이다. 하지만 때론 단 1개의 햄버거도 될 수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의 가치를 그렇게 평가 절하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사람들의 가치는 16만 개의 햄버거는 된다.

아내가 자신을 떠난 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다.

그에게 변한 것이라곤 집에 들어오면 늘 진동하던 향수 냄새가 사라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죄 많은 한 여인이 죄를 사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지방으로 도망갔다.

시골에는 서울만큼 죄가 만연해 있지 않으리라는 착각을 한 것인지 하여간 그녀는 그가 아닌 다른 16만 개의 햄버거를 데리고 시골로 떠났다. 그녀가 정말 죄를 사하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햄버거 22개 1/5조각짜리 성경책과 통장 안에 들어 있는 약 3만 3천 개의 햄버거만을 들고 나갔다. 그 정도면 하루에 햄버거를 여섯 개씩 먹는다 해도 약 15년은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창문을 닫는다. 내일이면 또 눈을 뜨고 회사에서 집 안에서 아내가 햄버거를 만들어 준 것처럼 엄숙히 앉아 있어야 한다. 그는 헝클어져 있는 침대를 대충 정리한 다음 자리에 눕는다.

그는 늘 하듯이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언제부턴가 숫자를 세야만 잠이 들었고, 만약 숫자를 세고 있는 나 자신을 인식하면 끔찍한 가위에 눌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끔찍하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느끼는 것일 뿐이다.

사실 그는 그것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그것을 즐긴다는 말은 그가 가위에 눌렸을 때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려 있었고, 그의 눈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기분 좋은 꿈이라도 꾸듯이 말이다. 그는 자리에 누워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백스물둘. 백스물셋. 백스물넷….’

그는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든다. 잠이란 깊은 심해에 빠진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 그는 꿈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가 꿈속에서 헤맨다는 것은 그만이 아는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그도 모르는 채 꿈속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는 꿈속에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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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해서 햄버거를 먹고 있다.

“백스물둘. 백스물셋. 백스물넷….”

그는 햄버거를 입에서 우물거리면서 숫자를 세고 있다. 어느 순간 그는 16만 개의 햄버거를 먹어 치웠고, 그는 그 순간 식인종이 된다.

“내 고기가 더 맛있어.”

그는 아내를 본다. 그녀와 함께 도망간 남자가 그녀를 뼈에서 발라내고 있다.

“이 고기가 네가 먹는 햄버거야.”

그 남자의 눈빛은 초췌한 눈빛이다. 그는 그 말을 들은 순간에 헛구역질해야 함에도 그의 입가에는 침이 가득 고여 있다.

“너는 식인종이야. 너는….”

그의 배속에 들어간 그녀의 몸뚱이가 그에게 말을 한다. 그는 애써 변명한다.

“아냐! 모든 사람이 평생 사람 하나는 먹어. 나만 식인종이 아니야. 모든 사람이 식인종이지. 모든 사람이.”

그의 변명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그는 여전히 손에 햄버거를 들고 있었고, 그 뒤로 ‘햄버거 고기가 된 소를 위한 추모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 간다. 그 사이에 그가 끼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주장한다. 우리는 소가 아닌 사람으로 만든 “인육 버거”를 먹어야 한다고 외친다.

그에게 어느 순간 비난의 소리가 빗발친다. 그는 귀를 막는다. 커다란 성경책이 눈앞에 펼쳐진다.

“소는 소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소는 소를 낳고, 소는 소를 낳는다. 결국 그 소는 사람이 된다.”

소 한 마리당 20,000개의 햄버거를 만들 수 있다. 결국 여덟 마리의 소는 사람 하나.

 

그는 순간적으로 눈을 뜬다.

아주 순간적으로. 아침임을 느껴서?

꿈이 끔찍해서?

아니다. 눈을 뜬 이유에 대해 추궁하자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눈뜨게 됐으니까. 눈을 뜨고 보니 오전 6시였고, 그래서 그는 출근 준비를 한다.

그가 실제로 이 꿈을 기억하는지는 그 자신도 장담을 못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세수하고 멍한 상태로 어젯밤 꾸었던 꿈을 다시 생각하려 해도 ‘햄버거’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꿈에 햄버거가 보이다니. 그는 간밤에 혼자 모든 가치를 햄버거로 환산한 것을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그 생각이 난 것뿐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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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은 언제나 활기찬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는 언제나 자리에 앉아서 무언가를 끄적거린다. 그 끄적거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무료하게 한 달을 끄적이면 그에게 2,000개의 햄버거를 준다.

그는 그것을 받아 들고 교회로 가서 십자가에 감사드리며 200개의 햄버거를 바치고, 그의 결백을 다시 한번 입증받는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의 햄버거를 십자가가 내려 준 일용한 양식으로 생각하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꼬박꼬박 먹고, 그러다가 남은 햄버거는 상하기 전에 얼른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은행에 넣어 둔다.

그의 생이란 한 달에 한 번씩 햄버거를 받기 위해 무수하게 끄적거리고, 또 가끔 햄버거에 식상한 이들이 모여 술을 마시면서 세상에 가득 찬 공기를 떨게 하면서 외쳐 댄다. 아니 그들은 입만 뻥긋대는 것인데 그것을 두려워하는 공기가 몸을 부르르 떨며 비명을 지르는 건지 모른다.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그러나 정작 햄버거를 벌 시간이 오면 중지된다. 공기 역시 그들이 햄버거를 벌 시간에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공기는 역전증 환자인가 보다.

역전증?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밤낮을 바꾸어 사는 것이 병이 아닐까?

소설가나 채팅에 미친 학생들이나 혹은 창녀들처럼.

그는 일상적으로 산다.

일상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일상적이라는 게 무엇일까?

그는 옆자리 미스 채하고 같이 밤을 보낸 적이 많다. 아니 그녀가 미스 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미스 채일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미스 채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같이 밤을 보낸다는 의미가 어떤 것일까?

청소?

그런데도 정말로 희한한 건 그녀와 같이 보내는 밤은 이미 내 정력이 소진된 상태여서 청소라는 것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 밤 동안 무엇을 하는가?

 

멀리 ‘Blue’라는 이름이 선연히 새겨져 있는 영화 포스터가 보이고, 바와 같이 생긴 곳이 있는데 그곳엔 아무도 없다. 단지 주인이 혼자 무료한 듯 이것저것 CD를 갈아 끼울 뿐이다.

술집 전체 조명은 노란빛과 주홍빛의 혼합이지만 약간 어둡게 깔려 있고 탁자는 열 개 정도가 적당하다. 시계는 열 시를 가리킨다. 음악은 주인이 정하기 전까지는 이것저것 혼합해서 나온다. Sting이나 Vangelis 혹은 Pink Floyd 정도가 적당하다.

 

미스 채 : (무료한 듯 하품을 하며) 당신은 언제나 여기에 앉으면 뭘 생각해요?

 : (술에 취한 듯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로) ㅇ…. 청소.

 

‘ㅇ….’는 오타가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발음하는지는 몰라도 그런 식으로 발음한 것처럼 들렸다.

 

미스 채 : (술잔을 핑크빛이 도는 입술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곧바로 때면서) 그러면 회사에는 왜 나와요? 하루 종일 청소나 하지. 당신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잖아요.

그의 시선은 음탕하다.

 : 하루 종일? 그럴 수는 없어. 청소해 줄 사람이 없거든. 그리고 난 햄버거를 벌어야 하거든.

미스 채 : (의아한 시선으로) 청소해 줄 사람?

 : (술을 한 잔 벌컥 들이켜면서) 청소해 줄 사람. 나를 청소 해 줄 사람은 나를 떠났거든.

미스 채 : (고개를 끄떡이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제가 해 드릴게요.

 : (같이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미스 채가?

미스 채 : (그를 돌아보며) 그래요. 햄버거 따윈 제가 사 드릴 테니까요.

 : (자리에 도로 앉는다.) 난 지쳤어. 그리고 미스 채는 법적 처녀야.

미스 채 : (같이 자리에 앉으며 술을 들어 벌컥 마신다. 그리고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거린다.)

 : (무표정으로 노래한다.)

 

제목 : 법적 처녀는 청소할 수 없어요.

법적 처녀는 법적으로 청소를 할 수 없어요.

법적 처녀는 술을 마시면 안 돼요.

법적 처녀는 남자랑 같이 밤을 보내면 안 돼.

둘이 같이 밤새도록 햄버거를 먹는다고 해도.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법적 처녀이기에.

 

그가 노래하는 동안 그녀는 기침을 멈춘다.

미스 채 :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그래요?

그녀가 노래를 부른다.

 

제목 : 창녀도 법적 처녀

창녀는 법적으로 처녀이겠지요.

그녀는 밤새도록 청소하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밤새도록 남자와 같이 밤을 보내며,

밤새도록 햄버거를 먹지요.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이상하게 안 봐요.

법적 처녀는 창녀일 수 있어요.

 

그녀의 노래를 모두 듣는다. 그도, 그녀도, 술집 주인도, 당신도!

 : (환하게 웃으며) 좋은 생각이 났어.

미스 채 :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그를 보며) 당신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니까.

 : (여전히 웃으며) 잘 가.

미스 채 : (당황한 표정으로) 잘 가? 잘 가죠.

미스 채는 갈 것이다. 미스 채는 가려 한다. 미스 채는 간다. 미스 채는 갔다. 미스 채는 가 버렸다.

 

그가 눈을 뜬 곳은 그 술집 화장실이다.

술집 화장실은 여관이다.

그는 벽에 숙박계를 쓴다.

‘19xx년 x월 x일 xx 그룹 인사과 OOO’

그리고 그는 햄버거 22.2개를 변기 위에 놓고 간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를 제일 먼저 맞은 건 비 내리는 음습한 거리이다.

음습하다?

그건 내가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집을 향해 걸어간다. 그가 잠든 시간은 토요일이었는데 눈을 뜨니 일요일이 된 것이다. 일요일 오전이다. 아니 오후인지도 모른다. 비 내리는 거리는 시간을 종잡을 수 없다. 단지 밤보다 밝다는 것으로 낮인 줄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시계 혐오증 환자 같다. 팔목의 시계는 만인을 위한 것일 뿐 자신의 시계는 아니다. 자신의 시간은 그 시계에 얽매여 있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는 집으로 향한다. 아내의 향수 냄새마저 싸늘히 식어 있는 자기 집 안방으로 간다. 침대는 말없이 자신의 가격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방안의 모든 물건이 마치 자신의 고유 가격표를 지닌 채 침묵하고 있다.

그는 우선 욕실로 간다. 제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욕실 정리장은 제 역할을 잃은 듯 보인다. 그는 그렇건 저렇건 욕조에 물을 받아 놓는다. 따뜻한 기운이 그의 후각을 적셨고, 그는 옷을 입은 채 욕조 안으로 들어간다.

“옷 입고 청소할 수 없을까?”

그가 포르노를 처음 본 고1 때부터 지금까지 집요하게 그를 파고들었던 의문이자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 인지만큼 풀지 못할 숙제이다.

물론 지퍼를 열면 된다는 단순한 상식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의 옷 안 가득 물이 스며든다. 그의 살갗에 물기가 촉촉이 적셔졌고, 그는 옷 입고 목욕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내가 미친 게 아닐까? 옷 입고 목욕하다니. 아내가 떠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미스 채와 어젯밤 일 때문일까?’

그는 자신에게 우울증이란 병을 판결한다. 그는 욕조에서 일어선다. 그러자 옷 안에 잠복해 있던 많은 물이 임무를 완수했는지 욕조로 돌아간다. 그러나 끈질기게 그를 물고 늘어지는 소수의 물 때문에 그는 몸에 물기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젖은 옷을 벗어 던진다. 수증기가 가득한 유리를 손으로 문지른다. 거울로 그의 나신이 비친다. 수줍은 거울은 다시 수증기로 제 눈을 가렸고, 그는 변태 성욕자처럼 거울의 수증기를 집요하게 닦아 내서 거울이 그를 직시하게 만든다. 한참을 그렇게 하자 그의 물건은 부풀어 오른다.

욕조 가득한 물 위로 거품 대신에 단백질 덩어리가 떠 있다. 샤워기로 대충 몸을 씻은 후 욕실 밖으로 나온다. 탁자 위엔 곰팡이 슬기 시작한 햄버거 조각이 있다. 그것을 들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는 순간적으로 시체를 유기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손발톱을 깎아 버리듯이 버릴 수 있는 부산물과 같은 것으로 편히 생각한다.

안방 문은 목젖을 드러낸 채 입을 벌리고 있었고 어두운 입 안엔 배 속으로 통하는 목구멍처럼 창문이 열려 있다. 그는 아직 다 갈리지 않은 음식물처럼 입 안 한 구석에 있는 침대에 몸을 눕힌다.

오히려 변기보다 불편하다.

허리를 펴고 자야 하는 것.

친구들과 나눴던 음담패설.

허리를 수그리면 후퇴할 줄 알만 하는 패잔병 꼴이란다.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청소기 흡입구에 몸을 기대라. 청소기는 곧 너의 불순물을 빨아 드릴 테니. 그렇게 하면 열 달 후에 너는 약간의 단백질로 햄버거 16만 개를 얻을 수 있단다. 기업의 투자 이윤으로 따진다면 최고의 수익성 사업이란다.

침대에 누운 그는 그 약간의 단백질 덩어리를 생각한다. 수백억 개의 단백질 구성 분자들. 하나둘씩 그것을 세다가 잠이 든다.

 

미스 채가 그를 부른다.

그의 눈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의 눈은 그가 되고 그녀는….

여기는 자궁 속.

그는 태아.

역할은 단 하나.

생각하지만 생각 없이 움직인다.

태아는 노래한다.

“사람은 16만 개의 햄버거.

임신부는 따블일까요?

그렇다면 임신부를 임신부로 만든 이는

0개의 햄버거일까요?

하지만 0개의 햄버거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16만 개의 햄버거는

다른 16만 개의 햄버거를 만들고

 16만 개 햄버거 외에

또 다른 단백질로 16만 개의 햄버거를 만들죠.

쌍둥이를 밴 임신부는 따따블?

다다익선(多多益善)

잘살아보세.”

 

그의 시가 신문에 실리자 많은 사람이 경악한다.

그러나 그 경악은 찬사의 다른 표현.

찬사는 그에게 햄버거를 가져다주었고, 그는 햄버거 회사 사장이 된다. 많은 햄버거 16만 개들이 그에게 원장님이라고 부르며 그는 미스 채에게 말한다.

“난 미스 채를 사랑해. 내 햄버거 16만 개가 썩어가도록….”

“저도요. 하지만 당신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16만 개의 햄버거를 만들게 했잖아요.”

“아니. 그건….”

 

침대에서 눈을 뜬 그는 시계를 본다.

6시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미 꿈같은 것은 기억의 언저리로 사라진다. 그는 아내가 햄버거를 만들어 준 것처럼 보이기 위해 단정하게 정리된 옷을 입고 회사로 간다. 그리고 종이에 무수하게 끄적거린다.

미스 채도 질세라 같이 끄적거리고 한 달이 지나자 다시 일용한 햄버거를 십자가가 내려 준다. 그는 일용할 양식을 십자가에 바친다. 그리고 나머지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쓴다.

 

미스 채는 여행을 떠난다. 그가 가고 싶어 했던 독일에 가는 것도 아니고 서울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녀와 동참하는 인물은 그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그녀와의 여행을 동참하게 된다.

토요일 오후부터 그녀의 방 안에서 둘은 꼼짝하지 않고 있다. 햄버거를 구석에 가득 쌓아 놓고 말이다. 둘이 같이 퇴근하자 회사의 많은 사람은 둘이 햄버거를 만들러 가는 줄 알고, 그에게 콘돔을 사 준다.

“이걸 사용하라고. 잘못하다간 임신시켜.”

한 동료가 그의 어깨를 치면서 말한다. 그는 그를 보며 크게 웃는다. 그리고

“우린 밤새도록 햄버거를 먹을 거야. 만들지는 않을 거라고.”

그 동료는 이상한 듯이 그를 보고 그는 같은 시선으로 그 동료를 본다. 그 동료는 그에게 다시 말한다.

“햄버거를 먹건 만들건, 그건 다음 사정이고, 어쨌든 이건 가져가 보라고.”

그는 하는 수 없이 그것을 받아 든다.

미스 채는 아무 말 없이 햄버거 다섯 개를 먹어 치운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역겨워서 먹을 수가 없다. 그녀는 화장실로 달려가 그것을 토하기 시작한다. 그는 그녀 뒤를 따라가 등을 토닥거리며 두들겨 준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나가 계세요.”

미스 채는 그에게 입안에 이물이 들어찬 소리로 말한다. 그는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그는 할 일이 없어 그녀 침대에 가서 눕는다. 그는 그녀와 사 온 햄버거의 개수를 센다.

 

그와 미스 채는 청소 중이다. 옷을 입은 채로 청소에 몰입하고 있는 중이다. 미스 채는 희귀한 소리의 교성을 질렀고, 그는 힘을 줄 때마다 숨을 멈추고 열을 센 후에 숨을 뱉는다. 온몸에 힘을 주고 숨을 멈춘 채 열을 세는 것은 너무나 커다란 고통이다. 그러나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다. 그는 갑자기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주머니 속에서 동료가 준 콘돔을 낀다. 그러고는 사정한다. 그러자 갑자기 미스 채는 그 콘돔을 빼내고 그것을 먹기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는 콘돔 안에 들어 있는 단백질을 먹기 시작한다.

“미스 채. 16만 개의 햄버거의 원료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스 채는 갑자기 배가 불러온다.

“내가…. 내가….”

미스 채는 단 두 마디를 남기고 펑 하고 터져 버린다.

 

그가 눈을 뜨자 미스 채는 입으로 그의 물건을 부풀리고 있다. 아니 그는 이미 힘을 입에 빼앗긴 상태이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본다. 콘돔은 그대로다. 미스 채의 입 주위에는 단백질이 묻어 있다. 미스 채는 입과 청소기를 구분할 줄 모르는 인간이다.

“미스 채 이건 입으로 들어가면 아무 소용 없어. 단지 햄버거 재료만을 낭비하는 것뿐이라고. 청소기가 빨아들여야 하는 거야.”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햄버거를 하나 집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햄버거를 버리고 종이를 꺼내 든다. 지퍼를 올리기 전에 햄버거를 싸고 있던 종이로 단백질을 문지른다. 약간 아려 온다.

 

19xx년 x월 x일

 

미스 채는 무얼까?

분명한 것은 미스 채 역시 16만 개의 햄버거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내 생각에 반박한 적이 없다.

미스 채를 어떻게 만난 것일까?

역시 분명한 것은 우리는 같이 일용할 햄버거를 벌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것뿐이다. 단지 나는 십자가가 그것을 내려 주는 것이라고 믿는 것뿐이고 미스 채는 그렇게 믿지 않는 것뿐이다.

미스 채의 생활은 왜 그럴까?

그녀는 왜 나를 만날까?

그런데 내가 왜 미스 채에 대해 생각하는가?

미스 채는 나를 청소해 준 적이 있는가?

입으로는 청소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녀는 나를 청소해 준 적이 없다.

청소가 그렇게 집착을 요하는 것일까?

 

19xx년 x월 x+1일

 

미스 채는 오늘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하긴 16만 개의 햄버거를 원료라고 해도 그것을 먹어 치웠으니 회사에 하루쯤 빠진다고 해도 그녀의 일용할 양식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옆자리에 없으니까 갑자기 종이에 무언가 끄적거릴 맛이 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빈 종이에 “미스 채는 어디 갔어요. 하지만 미스 채의 자리는 남아 있어요. 그 자리엔 언젠가 미스 채가 다시 앉게 되겠죠. 비록 미스 채와 같이 생긴 사람이 아닐지라도 다른 사람이 오면 그녀는 미스 채가 되는 거예요.”라는 말을 썼다.

이 글을 김 과장한테 들켜서 과장 자리로 호출되었다. 김 과장은 무어라고 떠들어 댔다. 그의 말을 듣노라니까 ‘김 과장이 왜 이리 화를 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기 회사도 아니면서, 설령 자기 회사라 해도 아주 미미한 자리에 앉아 있는 말단 직원의 아주 자그마한 태만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이상하였다.

김 과장도 옛날에 약간의 태만으로 이러한 무안을 당하면서 가슴 속에, 다음에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똑같이 해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나 보다. 포용을 모르는 김 과장이 불쌍하다.

그의 죄는 아무리 빌어도 십자가가 용서치 않을 테니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김 과장의 집에는 햄버거 22개와 1/5쪽짜리 햄버거가 없나 보다. 하나 사줘야지.

 

19xx년 x월 x+4일

 

근래 들어 일기를 자주 쓴다. 이렇게 자주 쓰는 것은 정말 오 년 만이다. 미스 채는 삼 일간 결근한 후에 다시 내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그러고 나서 미스 채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애 지우느라고 못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마치 그것이 내 탓 인양.

나는 그녀에게 조그마한 쪽지를 건네주었다.

“입으로 청소해도 애를 밸 수 있나?”

미스 채는 조그맣게 웃었다. 그날 점심시간에 미스 채는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려는 나를 이끌고 FF점으로 갔다.

FF점.

대학 1학년 때 경영학과 영어 성적을 합쳐 놓은 듯한 곳이다.

솔직히 나는 FF점이 무엇인지 말 몰랐다.

이번에도 역시 미스 채는 묻지도 않았는데 “FF점은 Fast Food점의 약자에요.”하고 말해 주었다. 그녀에게 이번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사람들이 만드는 햄버거는 십 개월 동안 충분히 익힌 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FF점은 오류이다. 정말 세상은 오류투성이이다.

FF점 안에서 미스 채는 커피와 햄버거를 시켰고, 나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미스 채는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내가 울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미스 채는 이번에도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혼자 말을 시작했다.

“김 대리 새끼 나쁜 놈이에요. 글쎄 김 부장하고 김 과장하고 미스터 김하고도 같이 잤으면서 왜 내 책임이냐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혹시 다른 김 씨하고 잤는지도 모를 것이고, 그 사람이 이 씨라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사실 난 그들하고 잔 적이 없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맨입으로 맨 생각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던졌다.

“청소기를 사용한 건 김 대리뿐이라는 말인가?”

미스 채는 화를 냈다.

“청소, 청소기 하지 말아요. 김 대리는 우리 집에 와서 청소기로 청소한 적 없어요. 그리고 김 대리는 날 강간한 거예요. 더러운 새끼죠.”

미스 채는 그 후로 계속 주절거렸다. 집에 와서 나는 사전에서 ‘강간(强奸)’을 찾아보았다.

‘강간이란 폭행이나 협박 따위의 수단을 써서 부녀자를 간음함.’이었다. 나는 다시 ‘간음(奸淫)’을 찾아보았다. ‘간음이란 부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음.’이었다. 그렇다면 ‘강간은 폭행이나 협박 따위의 수단을 써서 부녀자에게 부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음.’이다.

나는 얼마 전 잡지에서 보았던 강간에 대한 정의에서 남편이 아내에 동의 없이 성적 접촉을 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사전의 오류!

우리가 그토록 정확하다고 믿고 있는 사전이 오류 덩어리였다.

세상에 무얼 믿겠는가?

 

19xx년 x월 x+10일

 

일기를 믿지 못한다.

내가 하는 말도 사전에서 정의된 것이 아닌가?

 

그는 P-bar에 간다. 전에 갔던 그 술집이다. 그가 들어가자 그 집 주인인 듯 보이는 대머리 아저씨가 그에게 다가온다.

“전에, 화장실에서 주무시던 분이죠?”

아저씨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하다.

“어떻게 기억하시지요?”

그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떡값을 올려놓으셨더라고요.”

그는 더 이상 반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메뉴판을 본다.

 

󰡔 Coffee ₩떡값 Milk ₩떡값

Irish ₩떡값 CoCoa ₩떡값 󰡕

 

모든 것이 떡값이다. 미스 채는 메뉴판을 보고 갸우뚱거린다.

“모든 것이 떡값이라니. 이게 뭐야?”

그는 카운터로 달려간다. 그는 대머리 아저씨를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은 어떤 미인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자기와 생각이 통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가 돌아오자 미스 채는 그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저 아저씨한테 반했나 봐요. 이 집 주인인가? 대머리는 정력이 강하다던데.”

그는 미스 채에게 말한다.

“나 갑자기 청소하고 싶어. 미스 채.”

그는 미스 채를 이끌고 나간다. 대머리 주인은 그들의 뒷모습을 본다. 근처의 여관으로 들어간다. 그는 미스 채의 청소기로 들어간다.

“모두 떡값, 햄버거도 떡값. 사람도 떡값.”

청소가 끝난 후에 그는 미스 채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은 뭘 먹으며 즐거워할까.”

“무얼 먹으며 즐거워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미스 채는 뭘 모른다. 그는 미스 채에게 묻는다.

“미스 채. 왜?”

미스 채는 담배를 입에 물다가 그를 본다.

“왜?”

“응. 왜!”

그는 천장을 응시한다.

“왜?”

“응. 왜!”

그는 계속 천장을 응시하면서 미스 채의 말을 받는다.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미스 채는 “왜”를 열 번 반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왜’를 열 번 반복하니까 ‘왜’라는 단어가 어색하고, 그것이 이유는 묻는 것인지 의문스러워요.”

“그런데, 왜?”

그는 그런 것을 물은 게 아니었나 보다. 무얼 묻는지?

“왜? 좋으니까.”

역시 미스 채는 뭘 모른다. 그는 다시 묻는다.

“아니, 왜?”

“당신은 이상해요. 마치 사이코 같아요. 무슨 일이건. 하지만 그건 섹스에 아무 상관 없어요. 아마 당신도 내일이면 나를 잊을걸요? 나야 누구한테든지 섹스 파트너일 뿐이니까요.”

그는 미스 채가 더 이상하다. 그의 물음에 엉뚱한 것이 당연한 대답인 양 계속하니 말이다. 아마 늘 그런 대답에 익숙해서 일 것이다.

항상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물으면 그것에 동조하는 말이 “예”인 것이 이상하다. “오늘 밤은 좀 선선하지, 그렇지 않은가?” 하고 물으면 늘 “예”로써 대답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렇지 않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는 미스 채와 김 과장의 대화를 떠올린다.

“미스 채, 오늘은 시간이 많겠지, 그렇지 않아?”

“예, 오늘은 시간이 많아요. 하지만 왜요?”

“응, 시간이 많은가 해서.”

“많으면요?”

“응 미스 채한테 맛있는 거 사 주려고.”

“맛있는 거요? 어디요?”

“나!”

미스 채가 나눴을 법한 말들은 모두 이상한 오류를 담고 있다. 그의 실수인가, 미스 채의 실수인가, 김 과장의 실수인가, 나의 실수인가?

“배고프지 않아요?”

미스 채는 그의 생각들을 지우는 한마디 말을 던진다. 그는 미스 채에게 아직 듣고 싶은 말이 있지만 접어 두고 미스 채와 함께 여관을 나온다.

 

󰡔그제 발견된 30대 주부 변사체 신원 파악.󰡕

그는 미스터 김이 건네준 신문을 본다. 그는 신문을 읽지 않지만, 세간에서 사상 최대의 엽기적인 사건으로 인구에 회자하는 일이라 그도 얼핏 듣긴 들었던 내용이다.

󰡔그제 설악산 기슭에서 발견된 시체는 김XX씨(32)로 파악되었다. 주소가 서울특별시 강남구 xx동 xxx-xx….󰡕

그는 이름과 주소를 보고 자기의 부인임을 안다. 그러나 그리 충격적이지 않다. 이미 살만 발라낸 뼛조각들은 부인의 형체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이치를 모르는 이 있는가?

퇴근 후에 미스 채는 그를 위로한다.

“당신 아내가 그 사람이었다니.”

미스 채는 그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당신을 떠난 여자니까. 죽은 사람한테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당신을 떠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죽어도 되는 사람이에요.”

그는 미스 채를 본다.

“떠난 게 죽은 것이다? ‘죽은 사람은 떠난다’가 옳다고 ‘떠난 것이 죽은 것이다’라는 게 옳은 것일 수는 없어.”

미스 채는 그를 본다.

“부인을 사랑했나 봐요.”

그는 창밖을 본다. 비가 억수로 쏟아붓는다. 그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카페 주인에게 가서 떡값을 주고 집으로 향한다. 미스 채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그는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때 대머리 주인이 그를 본다.

“왜?”

그는 대머리 주인에게 말을 건다.

“그냥….”

대머리 주인은 무심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그는 충격을 받는다.

“사람들은 대답하길 원하죠.”

그는 대머리 주인에게 말을 계속 건다.

“때론 필요 없죠.”

대머리 주인은 CD를 갈아 끼우면서 말을 받는다. 미스 채는 안으로 다시 들어와 그에게 말을 건넨다.

“뭐 하세요?”

그는 미스 채를 보며 말한다.

“그냥.”

미스 채는 풋 하고 웃으며 그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그렇다면. 뭐. 저 먼저 가볼게요.”

그는 미스 채를 보내고 바에 앉는다.

“Sex on the beach.”

대머리 주인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Sex on the beach’를 만들어 준다. 그는 그것을 받아 든다.

Enigma의 “Return to innocence.”가 흘러나온다. 그는 고개를 든다. 대머리 주인은 무심하게 컵을 닦고 있다.

“좋군요.”

“네.”

대머리 주인은 그를 본다. 둘은 눈이 마주친다.

“순수함을 아세요?”

대머리 주인이 그에게 묻는다. 그는 고개를 숙인다.

“본성을 따르는 것.”

대머리 주인이 그렇게 말을 한다. 그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 후에 일은 누구도 모른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혼자 카페에 누워 있다. 출근하기 위해 그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는 전철 안에서 신문을 본다.

󰡔엽기적인 살인마 종적을 감춰.󰡕

그는 자세히 본다. 자신의 이름이 ‘X모씨’하고 나와 있는 것을 보니 괜한 기분이 든다.

그는 형사와의 만남에서 그의 아내는 그를 떠났고,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떤 남자와 아내가 떠났으며, 그녀가 죽은 것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건 미스 채가 시켰기 때문에 한 말이다.

만약 미스 채가 그렇게 시키지 않았다면 그는 그녀의 죽음은 다음 세대 햄버거를 위한 전 세대의 햄버거의 판매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햄버거는 전적으로 판매자에 의해서 판매될 뿐이지 그것의 판매에 관한 한 그는 무관하다며 항변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햄버거의 판매는 어디까지나 지방의 일일 뿐이지 서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원산지에서 서로 잘못 분리된 햄버거가 하나는 지방으로 하나는 서울로 올 수 있는 일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그것을 꼭 사라는 법은 없으며, 미미한 확률이나마 그가 그것을 샀을지라도 그것은 판매하는 측의 잘못이지 그의 잘못은 아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반문했을 것이다.

“왜 내가 판매하지도 않을 햄버거를 만들겠습니까?”

회사에 출근하자 많은 사람이 그를 위로한다. 그는 자신이 왜 위로받는지 모른다. 설혹 그가 그 위로에 대해 반응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습적 의미에서이지, 결코 그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는 유명해진다. 자리에 앉아 그는 서류 용지를 본다.

“스물둘, 스물셋, 스물넷.”

 

그는 형사와 심문 중이다.

형사는 그에게 아내에 대해 묻는다.

그는 대답한다.

그러자 다음날 신문에 그의 얼굴이 크게 나온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자 많은 사람이 그에게 사인을 해 달라고 달려든다.

그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간다.

그는 한참 도망간 후에, 의자에 앉는다.

그는 토크쇼 사회자가 묻는 것에 관해 대답한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기립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 청중을 행해 인사를 했고, 그러자 영화감독이 나와 그에게 영화 출연 제의를 했다. 󰡔햄버거가 된 여인󰡕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그는 흔쾌히 승낙한다.

영화 촬영 장소에는 많은 사람이 그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자 주인공인 그의 아내를 만나고, 아내와 같이 도망간 남자도 만난다.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아내와 같이 도망간 남자가 아내의 살을 발라내어 햄버거를 만든다.

이천 개의 햄버거를 순식간에 만들었고, 그는 그것을 백팔십만 원을 주고 산다. 그의 아내는 백팔십만 원과 썩어 가는 내장, 살이 발려진 뼈로 남았다. 그는 내장과 뼈는 개의 먹이로 주고 햄버거를 주식으로 산다. 그는 다시 한번 영웅이 되고,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인기를 끈다. 그는 󰡔여인으로 만든 햄버거󰡕라는 가게를 차리고, 장사를 한다.

 

“이봐.”

김 대리가 그를 깨운다. 그는 눈을 비비며 김 대리를 본다.

“피곤하면 휴게실에 들어가서 좀 쉬어. 힘든 일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는 그가 그의 심정을 그처럼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러자 미스 채는 안쓰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좀 쉬어요. 그리고 이따가 좀 봐요.”

그는 휴게실을 행해서 간다. 머리가 아파 온다. 휴게실에 들어가서 그는 소파에 눕는다. 그리고 재떨이의 담배꽁초들을 세기 시작하였다.

“열둘, 열셋, 열넷,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아무리 숫자를 세도 잠이 오지 않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숨을 쉴 수 없다. 그러나 온몸에 즐거움이 퍼진다. 눈을 돌려 보니 담배꽁초들이 그의 목을 조르고 있고, 입에서는 햄버거 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고환에 가득 차 있던 햄버거 원료들이 입에서 나오자 신기하다. 청소도 하지 않는데 햄버거 원료들이 나오다니. 그는 입과 항문이 혼동된다.

‘대머리 주인이 나를 외계인으로 만들었구나.’

그는 하얀색 종이가 그를 덮어 가고 있는 것을 본다.

“이거. 햄버거 이천 개를 만들 수 있지? 여기 백팔십만 원.”

미스 채다.

“아니.  16만 개의 햄버거야. 그리고 생산도 할 수 있어. 왜 내가 이천 개밖에 되지 않지?”

그는 미스 채에게 항변한다.

“아니. 당신은 이미 많은 원료를 사용했고, 당신 아내 역시 이천 개의 햄버거 값이었고, 모두가 이천 개의 햄버거 값이야.”

미스 채는 웃으며 말한다.

“아니야. 인간은 존엄해. 16만 개정도의 값어치는 있다고. 인간은 존엄해!”

미스 채는 칼을 든다.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는다. 결국 그 사람은 소가 된다.”

미스 채는 낮게 읊었다.

그는 하얀색 종이가 그를 덮었다는 것을 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것은 그와 약속했던 미스 채에 의해서였다. 그는 혀를 깨문 채 쓰러져 있었다. 미스 채는 그의 곁으로 가서 그를 껴안았다.

“그것 봐. 당신도 떠나잖아.”

미스 채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후하고 연기가 날아간다. 담배를 끄고 그녀는 하얀 윗옷으로 그의 얼굴을 가린다.

잠시 휴게실에 들렸던 미스터 김은 그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며, 경찰서에 신고했다. 그러자 형사들이 왔고, 많은 사람이 그 형사가 질문하는 것에 대해 대답했다.

“요즘 태도가 이상했어요.”

김 과장은 대답했다.

“집에 잘 안 들어가는 것 같아요. 밤늦게 연락해도 늘 없었거든요.”

김 대리는 대답했다.

“햄버거에 무척 집착했어요. 아마도.”

미스터 김은 대답했다. 미스 채는 그들의 말에 웃는다. 경찰과 함께 갔다가 풀려났다.

다음 날 신문에 그의 기사가 나왔다. 스포츠 신문 일 면 기사로 검은 바탕에 노란 글씨체가 선명해 보였다.

󰡔엽기적인 살인마. 자결!󰡕

미스 채는 그것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이며 신문을 향해 물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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